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디 푈러 (문단 편집) ==== 2002년의 성과 ==== 게르만 순혈주의를 무너뜨리면서 다양한 선수 기용과 실험을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2010년대의 황금 세대가 등장하게 된 원동력을 만들어준 감독이다. 폴란드계의 [[미로슬라프 클로제]]와 [[가나]] 혈통의 [[게랄드 아사모아]], [[나이지리아]]계 패트릭 오우오모엘라 등 과감한 선수 기용으로 보수적인 독일 축구의 벽을 타파한 감독이었다. 특히 당시 [[무명]]이였던 [[미로슬라프 클로제|클로제]]의 기용, 당시 독일 최고의 선수인 [[옌스 노보트니|노보트니]], [[메멧 숄|숄]], [[제바스티안 다이슬러|다이슬러]]의 공백을 [[카르스텐 라멜로프|라멜로프]], [[베른트 슈나이더|슈나이더]]로 메우는 등 나름 전술적 플랜에 대해선 폭이 넓은 감독이었다. 뒤에 언급하겠지만 독일의 3-5-2 전술의 고착화를 시킨 감독으로 인해 저평가를 받고 있으나 그 당시 대세 전술인 4-4-2를 쓰기엔 특정 능력에만 특화된 독일 선수들의 능력이 부족한 상황이었고[* 대표적인 예로 [[디트마어 하만]]을 들 수 있다. 테크닉이 조금 부족했을 뿐이지 전성기 시절엔 레지스타로 불릴 정도로 나름 수비형 미드필더의 교과서 였으나 4-4-2전술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박스 투 박스 형 능력이 없는 선수였으며 그렇기에 [[미하엘 발락]]과의 호흡에 크나큰 문제를 보였다.] 이에 푈러 감독은 고육지책으로 3-5-2 전술을 썼는데 이 것이 어느정도 2002년 월드컵에선 효과를 보였다. 2002년 월드컵에 참가한 팀들은 대체로 투톱을 썼기에 쓰리백으로 상대하기에 용이했으며 이 덕에 월드컵 결승까지 진출했다. 사실 따지고 보면 2002년도까진 독일 국가대표팀에 그리 인재가 없었던 것은 아니였다.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한 [[옌스 노보트니]], [[크리스티안 뵈른스]], [[제바스티안 다이슬러]], [[메멧 숄]]은 당시 유럽에서 알아주는 수준급 선수들이였다.[* 다이슬러나 숄의 클래스는 이미 입증되었고 노보트니나 뵈른스 역시 2001/02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최고의 폼을 보여주며 각각 레버쿠젠과 도르트문트를 UCL, UEFA컵 결승에 진출시켰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